블러와 오아시스의 남북 전쟁 (1995년 8월)
(From : Never Mind 'Alternative Rock' It's Just Another Pop Music)
라이벌을 만들어 떠들썩하게 보도하기 좋아하는 영국의 음악 잡지들은 블러와 오아시스를 두고 '남북 전쟁'을 방불케 하는 속보 경쟁을 벌였다. 1995년 8월에는 두 밴드의 싱글이 같은 날 발매되는 등 본인들의 라이벌 의식도 그에 못지않았다.
북부(맨체스터) 노동 계급 출신인 오아시스와 남부(런던 근교의 에섹스) 중산층 출신인 블러는 언론의 과장 보도를 걷어 내더라도 많은 면에서 흥미로운 대조를 이룬다. 똑같이 복고적인 사운드를 들려 줌에도 불구하고 이를 표현하는 방식은 전혀 다르다. 오아시는 자신들이 로큰롤을 하는 밴드임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이를 자랑스러워한다. 데뷔 앨범은 롤링 스톤스나 후를 연상시키는 투박한 로큰롤 넘버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록 음악의 전형적 구조와 거친 기타 사운드는 그들의 이미지만큼이나 솔직하고 직설적이다. 이에 반해 블러는 록 밴드의 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록 음악의 경계를 넘어선다. 대중 음악의 다채로운 스타일을 차용하고 있으며, 편곡 능력과 인상적인 선율 작곡 솜씨는 비틀스나 킹크스의 팝적 감각을 연상시킨다.
오아시스가 ‘미국 취향의’ 로큰롤에 가깝다고 한다면, 블러는 미국 잡지에 의해 ‘너무 영국적인’이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자국의 팝 전통에 충실하다.
메시지면에서도 젊은이들의 소외감과 무력한 꿈을 ‘솔직하게’ 드러내는 오아시스와 강하고 ‘냉소적인’ 블러는 뚜렷이 대조된다. 처세면에서도 ‘누가 묻지 않아도’ 스타라는 점을 누누이 강조하는 오아시스와 건방지지 않고 ‘쿨’한 블러는 달라 보인다. 말투면에서도 투박한 ‘북부 촌놈’의 방언을 구사하는 리암 갤러거(Liam Gallagher)와 남부 교외의 어눌한 언어를 구사하는 데이먼 앨번은 마치 다른 나라 사람 같을 때조차 있다.
근대 국가 성립 이후 ‘우리와 그들’이라는 논리로 잉글랜드의 남북을 갈라 온 경계선이 이처럼 선명했던 적도 그렇게 흔치 않을 것이다. 특이한 것은 이 남북 간의 문화 전쟁을 실제로 그렇게 심각하게 여기는 사람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물론 팬들 사이에 험악한 설전이 오가기는 했지만 말이다.
'자국의 팝 전통에 충실한 가장 영국적인 밴드', 블러(Blur)
'세계를 정복한 로큰롤 스타', 오아시스(Oasis)
Blur - Country House [Parklife](1994)
블러의 3집인 [Parklife](1994)는 브릿팝(Brit-Pop)이라는 용어를 탄생시켰다고 할 만한 앨범이다. 초기의 몽롱한 블러의 사운드는 이 음반에 이르며 발랄한 사운드로 대체되고, 음악적 관심도 듬에서 화성과 스케일로 이동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블러의 전형적 사운드라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시기의 음악부터이다. 이같은 화려하고 풍성한 사운드는 곧이어 등장한 오아시스의 소박하고 거친 사운드와 함께 브릿팝의 양축을 형성하게 되었다.
Oasis - Wonderwall [(What's the Story) Morning Glory](1995)
"Wonderwall"은 빌보드 모던 록 차트 1위를 두 달 이상이나 차지했으며, 앨범 판매고도 미국에서만 300만 장 이상을 기록한 곡이다. 그리고 오아시스는 비틀즈에 이어 '세계를 정복'해 달라는 영국인들의 욕망을 실현시킨 밴드다. 국제적 반응으로 따지면 압도적으로 오아시스가 승리했다고 할 수 있다. 오아시스는 '나는 당신의 냉소적인 태도가 맘에 안 든다, 당신은 총명하지도 않은데, 당신이 한 모든 것이 멋지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의 음악은 별 볼일 없다'(Married With Children)면서 블러에 대해 으름장을 놓곤 했다. 영국 현지에서도 사람들은 잘난 '체하는'블러보다 '내가 킹왕짱이다'라고 떠들고 다니는 오아시스에게 보다 우호적이었다.